소설, 알루주에 바이알자만(시간을 거슬러)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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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죽음

 

소말리아로 떠나 기 전에 팀원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전달해 주고 싶었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그곳의 상황이 지금은 좀 더 심각한 상황일 수 있고, 우리나라와 연관성이 더 큰 이슈였기 때문에 바로 소말리아로 향했다.

팀원들과는 전화로만 통화를 하고 당분간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내가 본 것이 사실이라면 아직 시간은 있다. 단장님의 말대로 조급해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내전이 몇십 년째 지속되면서 소말리아 국내 경제는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내전으로 초토화된 나라에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은 상황에 정부 관료들마저 부패해 해적들과 결탁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소말리아 모가디슈로 향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황폐함이 느껴졌다.

전쟁의 참상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른도 먹을 것을 먹지 못해 몸이 삐쩍 말라버리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들은 더 처참한 상황이었다.

구호물자를 일부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었지만, 너무 턱 없이 부족했다.

전쟁은 왜 일어나야만 했나? 게다가 같은 민족끼리의 내전

사람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상태이고, 전쟁 이후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탓에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진 않지만 아직 북한의 상황은 다르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먹지 못해 죽어 나가고 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지만 먹지 못해 죽는 것은 얼마나 처참한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정말 오지 않는 것일까?

내가 미래로 가서 본 프랑스 테러보다 오히려 소말리아의 상황이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먹지 못 해 죽어가는 사람들.

소말리아 해적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보다 이곳의 실상을 UN에 보고한 후 인도적 지원을 바라는 것이 더 시급하게 느껴졌다.

소말리아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다. 91년 이후 철수 한 뒤 06년 12월 말부터는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한국 교포들도 없는 실정이다.

그곳에서 나를 반겨주는 이는 이현정 대위였다.

이 대위는 레바논 파병 시 같이 근무했던 공병 소속 장교였다.

UN군 소속으로 소말리아에 공병 지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에 먹을 것도 문제지만 식수가 더 문제인 관계로 공병대가 우물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해 주고 있었다.

"안녕, 이대위"

"반가워! 손대위, 잘 지냈지?"

"그러게 같이 레바논에서 근무했었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

"이대위도 파병 복귀하고 바로 UN 소속으로 공병 지원 나온 거야?"

"그렇게 되었어. UN군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좋은 경력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런데 여기 상황이 정말 심각하네.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그래, 나도 여기에 오자마자 눈물을 흘렸어. 레바논에서 상황보다 더 심각해서..."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백 명이 넘어."

"게다가... 그 죽은 사람들을 그냥 길거리에 방치하기까지 해!"

나는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실제로 시체가 썩어 가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물을 파는 것도 일이지만, 시체를 묻어 주는 것도 같이 하고 있어. 시체가 썩어 우물을 판 곳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을까 해서, 그러면 그 우물은 먹지도 못하게 되니까."

정말이지 처참했다.

죽음이 이렇게 처참했다.

먹지 못 해 죽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만, 그마저도 힘든 상황.

전쟁이 이들의 삶을 처참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웃고 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웃고 있었다.

"이 대위 나는 소말리아 해적 동태를 파악하러 왔는데, 당분간 도와줄게!"

"그래, 고마워.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했었는데..."

"UN 본부에 보고해서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상황을 직접 보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많이 못 해주는 이유가 있을까?"

이 대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그녀도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먼 타국에서 바라봤을 때는 나의 일이 아니라서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직접 보고 겪게 되면 슬프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그래, 손대위"

나는 이대위와 함께 며칠 동안 우물 만드는 작업과 시체를 치우고 묻어 주는 일을 병행해 나갔다.

시체를 묻어 주는 일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모가디슈 외곽 지역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는 말을 이대위에게 전달받았다.

그것은 내가 레바논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보았던 펜던트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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