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알루주에 바이알자만(시간을 거슬러)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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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팀장님! 2호차 부팀장입니다." 

"후방에 정체모를 차량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대기 바람."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후방 감시 잘하고 있길 바란다."

"전방 삼거리에서 좌회전하길 바란다." 

"다음 TP까지 계속 따로 오면 상급부대에 보고 하고 차량 조회 요청한다. 이상"

"넵 알겠습니다."

삼거리에서 정체 모를 차량은 더 이상 차라 오지 않았다.

"부팀장!"

"넵"

"다음 TP로 정차 시에 혹시 모르니 후방 및 전방 감시 잘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2대의 장갑차는 경치가 좋은 TP점으로 이동 중에 있다.

고불거리는 비포장 도로는 순찰을 할 때마다 장갑차가 들썩인다.

"부팀장님! 오늘 순찰 완료되면 뭐 하나요?"

"글쎄? 아무래도 지난번에 마저 하지 못한 작업을 하지 않을까??"

"또 작업이요? 아 진짜.." 

"벌써 3달이 다 되어 가는데, 작업만 하다 파병 끝나겠습니다."

"글쎄, 원래 1진이 힘든 거지.."

"부팀장님 이라크에서도 작업 많이 하셨나요?"

"이라크 파병 갔을 때는 작업을 많이 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벌써 3년 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나네..."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곳! 이라크 아르빌

2월 이라크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이지 여기가 중동인가 싶었다.

날씨가 엄청 추웠고, 우박이 내리고 손발이 시려 장갑을 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리고 4월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땡볕에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3월까지는 우기였던 터라 파릇파릇했는데, 어느샌가 모래바람이 불어올 때면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시기여서 더위가 뜨겁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5월이 되면서 50도를 넘나드는 고온에 숨이 턱턱 막히고 작전 수행이 힘들 정도였지만,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고통이 아니었다. 

처음 이라크 파병을 간 뒤 부대 정비를 마치고 이전 차수 부대에게 임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정신없이 2주가 흘렀다.

부대에 적응도 해야 되고 임무 숙지도 다시 해야 되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파병 전 특교단에서 훈련도 많이 했었지만 실제 자이 X 부대에서는 실제는 조금 달랐고, 이전 부대와 교대 근무를 해야 했고, 우리 대대가 다 전개를 하지 않아 매일 야간근무로 인해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같이 근무하던 중대장님의 배려로 집에 전화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아버지! 저 현석입니다. 잘 지내시죠?"

"응, 아들! 잘 지내지, 어떻게 전화를 했어?"

"네 중대장님이 전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어요."

"뭐하고 계셨어요?"

"일하고 있었지!" 

"네 그러시군요. 근데 전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잘 안 들려요. 통화는 오래 못 할 거 같아요."

"아 그래 그래 건강하고.."

"네 다시 전화드릴게요. 어머니한테도 안부 전해 주세요."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와 통화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갑자기 지원 장교님이 부르시더니 집에 전화를 해 보라고..

"네? 저 오전에 아버지와 통화했었습니다."

"그 그래." 

살며시 위성 전화를 건넸고, 둘째 동생이 통신병으로 근무했던 터라 울 부대로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

‘나는 뭐지?’ 

아버지는 나와 통화하고 몇 시간 뒤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대대장님의 배려로 한국으로 복귀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파병지에서 다시 한국으로 복귀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내무반으로 돌아와 정신 나간 놈처럼 울기만 했다. 

다른 팀원들에게 미안할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다음 날 복귀하는 전 차수 부대원들과 함께 쿠웨이트로 향했고, 다시 쿠웨이트에서 1박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먹지도 않고 눈물만 흘렸다. 빨리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12시간의 비행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비행기 안에서는 계속 눈물만 흘렀다.

"장교님! 여기 손수건'

대한항공 전세기 승무원이 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곧 내릴 거예요.

한국에 내리기 전에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시 레바논 파병지,

"부팀장님 뭐 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잠깐 다른 생각이 들어서요."

"저기 앞에 TP점입니다."

"네"

"중대장님! 후방 이상 없습니다."

"그래! 부팀장 내려서 사주 경계하고 평상시 하던 데로."

"네 알겠습니다."

내리자마자 전후방 경계하고 TP점 이상 유무 체크!

"이상 없습니다."

"그래 알겠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앞까지 수색해보도록..."

"네 알겠습니다."

2~3일에 한 번씩 찍는 TP점 뭐 별다를 게 없었다.

그냥 경치가 좋을 뿐이었다.

절벽 아래 흐르는 강과 반대편 능선 반대편 능선을 관찰하기 위해 TP점을 순찰 하지만 매번 특이 사항은 없었다.

"부팀장님!"

"네?"

"왜요?"

"앞에..."

"뭐?"

"응?"

"이게 뭐지?"

"지난번에도 이런 게 있었나?"

"지난번에는 이런 게 없었습니다."

"잠깐만!"

"팀장님 팀장님!"

"여기 이상한 게 있습니다."

갑자기 무전이 연결이 되질 않았다.

불과 50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큰 소리로 중대장님을 부를 수는 없었다.

"최 중사! 잠깐 대기하고 사주 경계해 주세요."

"네"

"제가 가 보겠습니다."

그것은 유물스러운 펜던트였다.

순찰 중에 캔, 나무 덤불, 쓰레기가 이상하게 있다면 IED가 설치되어 있을 줄 알고 초반에 부대 전개 후 첫 순찰 할 때는 다들 긴장했던 부대원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파병이었던 터라, 조금은 다른 팀원들보다는 IED에 대한 감각은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순찰 때는 보이지 않았던 펜던트였기에 혹시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치해 놓은 폭발물(IED) 일수 있었기에 순간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게 펜던트를 짚어 들었다.

순간 강렬한 빛이 폭발했다.

'나는 죽은 건가?' 

"부팀장님! 부팀장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죽지는 않은가 보다 최 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스르르 눈이 감겼다.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유치원을 가기 위해 신발을 싣고 있었다.

조그마한 손, 발 

그리고 유치원 가방

"아빠!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한눈팔지 말고..."

"응"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보는 날

"아버지 저 시험 보고 올게요"

"그래 잘 보고와!"

"아들 파이팅~~"

"네"

시간은 다시 흘러 수능 당일!

"아들 시험 잘 보고 잘 못 봐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네 알겠어요"

정말이지 수능을 망쳐 버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점수를 맞춰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저 수능 너무 못 봤어요. 너무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아버지는 나 초등학교 때 끓었던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 장교 지원하려고요."

"그래 잘 생각했다."

"군장학생을 같이 지원해서 학비가 나와요"

"대신 군대에 5년 있어야 돼요."

"그래 우리 집안에 장교가 다 나오네.."

"아버지 저 특전사 가요."

"그래 잘했다." (장교는 특전사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ROTC 동기 장교 3200여 명중 보병 1800명 중 단 33명만 뽑힌다. 다 가고 싶지 않은. 그런 힘든 부대)

나는 지원 희망을 적긴 했지만 설마 특전사에 가게 될지 몰랐다.

그날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다.

"아버지 저 이라크 파병 가요."

"부대에서 전부 가는 거라 저만 안 갈 수 없어요."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항상 강한 척하셨지만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끓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 되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꿈속에서 쏜살 같이 지나갔다.

나는 불효자였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눈물이 없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고, 나는 의무실에 누워 있었다.

최 중사 말로는 갑자기 쓰러졌고, 잠이 들었다 했다.

정말이지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틀 동안 누워 있었다

[현석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두리번거렸는데, 내 옆에는 의무대장님과 간호장교님이 계시고 최 중사가 있었다.

[아들!!]

나는 쓰러져 있었던 시간이 짧았다 생각했는데, 이틀이란 시간 동안 왜 깨어나지 못했을까?

군의관님은 특이한 증상도 없고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보다 몸이 가벼워지고, 구보를 하면 예전보다 날렵해져 빠르게 뛰고 있다는 것이 느낄 수 있었다.

야간 정찰을 나간 날, 나는 확실히 나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었다.

"팀장님!"

"후방 이상 없습니다."

"단지 지난번 그 차량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

"상급부대에 차량 조회 요청했었는데, 특이점 없다고 했어.'

"그래도 모르니까 잘 주시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 넓은 작전 지역이 아니라서 봤던 차량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후방에 따라오던 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팀장님! 후방에 차량이 추월하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우리는 속력을 낮춰 차량을 보내고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뒤에서 오던 차는 우리가 빨리 보내려는 것을 아는지 스피드를 내기 시작해 추월해 나갔다.

[현석아!]

[위험하니까 돌아서 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며칠 전 정신이 든 이후 다시 들린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나는 환청이 들려 이상하게 생각했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응]

[제 목소리가 들리 시나요?]

[그래 잘 들려!]

[위험하다고 돌아가라고 했는데 무슨 말이에요?]

[응 앞에서 폭발이 일어날 거야?]

[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상 했지만 갑자기 폭발이라니..

나는 잠시 생각을 했고, 중대장님께 무전을 했다.

"팀장님 죄송한데 저희 다른 길로 돌아 가면 안 될까요?"

"부팀장 갑자기 왜?"

"그냥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냥 제 말씀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그래? 알겠어."

2번 TP는 스페인군이 운영하는 검문소와 불과 200m 떨어진 폐 공장 건물 지역으로 북부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도로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두 군데가 있는데, 지금 도로에서 조금 많이 돌아가기는 하지만 정찰 시에 수시로 바꿔서 정찰했었기에 중대장님은 내 말을 듣기로 했다.

평상시 보다 1~2분 정도 늦게 TP로 들어가고 있었다.

TP점 들어가기 앞서 후미 장갑차를 지휘하는 나는 먼저 들어가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팀장님! TP점령하겠습니다."

"그래 이상 유무 보고 하도록"

TP 들어가려는데, 스페인 검문소 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폭발 소리 들었습니까?"

"응 부팀장 상황 파악해봐"

"네" 

빠르게 스페인 검문소 가까운 곳까지 이동했다.

검문소는 불타고 있었다.

정찰 중 우리를 추월한 차량이 폭발한 것이었다.

"팀장님 우리를 추월했던 차량이 자살 폭탄 테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팀장! 잠시 대기 상급 부대에 보고 하겠다."

너무 다급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UN군 소속으로 각 지역을 나눠서 여러 국가들이 섹터를 정찰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총괄은 이탈리아 군 사령관이 간접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보고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상급부대 위기대응반 부대가 출동하였다.

우리는 폭발 지역 근처에서 2차 테러에 대한 감시정찰을 진행 중에 있었다.

상황을 위기대응반 부대에 인계하고 부대로 복귀했다.

상급부대 하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 시간부로 위험단계를 최고 단계인 블랙으로 상향 조정하고 모든 정찰 활동을 중단하며,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완전군장 후 대기한다.

[아버지?]

[응?]

[알고 있으셨나요?]

[응,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나는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셨다.

나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말해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을 다 말해 줄 수는 없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말씀해 준다 하셨다.

우리 팀은 상황 판단을 잘하고 조치를 잘했기에 팀 표창을 받게 되었다.

스페인 검문소 폭발 사건은 알카에다 하부조직의 테러로 검문소 폭발 후 북부 지역을 장악하려는 전면 전 계획의 일부로 드러났다.

우리 팀이 신속하게 위기대응반을 요청하였고, 2차 테러 및 전면전을 막을 수 있게 되어 팀 표창을 받게 된 것이다.

"손대위!"

"넵"

"대위 손현석"

"정찰 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우회했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그래 잘했다."

"네가 우회 건의를 하지 않았다면 2번 TP점 도착을 먼저 했을 것이고, 우리를 먼저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고 한다."

"넵 단장님"

우리 팀은 팀 표창과 함께 단장님 주관 회식을 진행하였고, 단장님은 나를 칭찬해 주셨다.

팀 회식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오만 잡생각이 다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도 이상한데, 위험을 알려 주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상식적으로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부른다고 해서 계속 답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나의 위기 상황에만 나에게 말씀을 하셨기에 이게 무슨 일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건지...

앞으로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일 들이 벌어질 것이기에,

아버지가 위기에 말해 준다고 하였을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도 인해 잠이 오질 않았다.

 

 

1회를 마치며

나중에 맞춤법 검사를 해 봤는데,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단, 글을 쓰면서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살짝.

 

군대 이야기 사람들이 정말 싫어 할 텐데, 이 소설의 가장 큰 것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부터 시작 됩니다.

 

물론 저의 경험담이 많이 들어 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내용은 허구도 있습니다.

 

다시 읽어보면 민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글을 써 내려 가면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연재 꾸준히 하고, 장편을 쓰는 작가분들이 진짜 대단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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